Ⅰ. 한국과 일본의 관계(한일관계)와 APII(아시아태평양정보기반)
APII에 대한 일본의 대응을 관찰하기 위해서는 우정성과 함께 통산성의 움직임에도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AII는 우정성의 전관사항(專管事項)이지만 APII는 우정성과 통산성이 동시에 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적인 측면에 비중을
관계도 답보상태에 머물게 되었다.
우리 정부는 이러한 상황 하에서도 남북간 교류협력을 착실하게 추진하고 우리의 대북정책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확산시켜 나감으로써, 북한 핵문제를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한반도에서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우선 미국, 일본,
북일수교 협상에서 일본이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는 구실을 제공하였다.
궁극적으로 북일관계는 일본인 납치 사건 문제를 극복하고 본격적인 관계정상화의 길에 접어들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은 양국간의 관계개선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동시에, 향후의 남북 관계, 한일관계에서 보다 적극적
관계정상화에 의욕을 보였으며, 그 다음 주인 19일에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제4차 6자회담이 공동성명을 채택하고 폐막하였는데, 공동성명에서 ‘북일은 평양선언에 따라서 양국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기로 승낙했다’고 명문화됨에 따라 북일수교교섭 재개의 계기가 마련되었기 때문
일본사회의 우경화는 한일 양국의 관계 정상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21세기 한일관계도 일본의 국내환경의 흐름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급격한 우경화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일본의 우경화에 대한 원인은 국내외의 다양한 요인에서 그 원인을
한국의 북방정책은 한반도에서의 러시아와 중국의 영향력을 확대시켰으며, 일본의 대북한 관계개선에 대한 한국정부의 압력을 완화시키는 효과를 가져왔고, 미국의 경제적 퇴조와 그에 따른 일본의 역할 증대 압력의 강화, 그리고 국내 정치 상황의 변동 등은 일본으로 하여금 대북한 수교원칙을 천명
일본은 2차 대전 전후처리의 종결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것이다. 나아가 양국은 각각의 주장에 대한 전제조건까지 제시를 하고 있다. 북한은 식민지 시대의 과거청산을 요구하고 있는가 하면, 일본은 북한에 납치되었다고 하는 일본인 문제의 해결과 핵 및 미사일 문제의 해결을 요구하면서 수교교섭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기 시작했다. 1994년 3월 19일, 북한 측 회담 대표의 소위 ‘서울 불바다’ 발언 이후, 남북관계의 위기는 고조되었고 김일성의 갑작스런 사망은 이를 돌이킬 수 없게 만들었다. 당시 한국 정부는 김일성 사망 이후 북한 체제가 조만간 붕괴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남은 것은 북한을 효
관계 수립 발전에 관한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토의할 용의를 가지고 있다.”고 발표하였다. 그리고 김일성도 1957년 9월의 최고인민회의의 연설에서 일본과의 수교가 양국 간의 호혜와 아시아의 평화에 이바지할 것임을 역설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이에 응할 수 없었다. 사실상 일본과 한국은 국
관계는 그대로 증진시켜 나갔다.
1965년 한일 두 나라가 기본조약을 체결하고 외교관계를 수립하자 북한은 곧 공식성명을 발표하여 이 조약을 무효를 주장하였다. 한일 국교정상화는 한일관계를 정상화함으로써 한국과 일본과의 관계를 외교적․경제적으로 긴밀하게 만들었지만, 일본과 북한과의